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어느 여성 구직자의 편지 하나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D 제약에 면접을 본 여성이라며 자신의 신분을 밝힌 이 여성 구직자는 면접장에서 있었던 일을 ‘네고왕’이라는 유튜브 채널 게시판에 공개했다.
“지난 달 D 제약에 면접을 본 구직자입니다. 그곳에서 너무 황당한 사건을 경험해서 올립니다. 어느 면접관이 저에게 '군대에 갈 생각은 없느냐? 군대에 가지 않아서 남성에 비해 급여가 작을 것이다. 괜찮겠느냐?' 등의 질문을 하더군요. 여성인 저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일부러 그런 질문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참고 있었는데, 지금 그곳의 대표가 ‘네고왕’(유명 유튜브 채널)에 나와서 본인들이 여성 친화적 기업이라고 홍보를 하고 있어서 그 모습이 화가 나 제 사연을 공개합니다.”
D 제약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제약회사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영업이 탁월한 기업의 경우 수성(守城)에 다소 소홀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회사 역시 기반을 다지지 못하고 성장 위주로 조직관리를 해온 탓에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초기 입사한 리더들의 수준이 조직의 성장에 맞춰가지 못해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련하여 모두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건 하나를 더 소개하고자 한다. 2013년에 발생한 N 유업의 ‘대리점주 막말사건’이 그 주인공이다.
30대 초반의 영업사원이 50대 후반의 대리점주에게 전화를 걸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면서 제품 매입을 독촉했다. “지금 재고가 너무 많아서 힘들다. 시간을 좀 달라”는 대리점주의 요청에 “팔아서 물건 매입하는 대리점이 몇 개나 된다고 그렇게 엄살이냐? 빛을 내서라도 할당된 물건은 지금 다 가져가라”는 말로 시작한 욕설은 10여 분간 이어진다. 여러 번 이런 전화에 시달린 대리점주가 이번에는 녹음을 했고, 그 녹음파일이 뉴스에 방영되면서 N 유업은 반사회적 기업이 되어 전국적인 불매운동을 맞게 된다.
여기서 N 유업이 어떤 기업인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1964년에 설립된 N 유업은 설립 당시만 하더라도 우유생산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시장은 이미 다른 기업이 선점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사업 영역을 개척하여 분유시장에의 선발주자가 되기로 한다. 당시에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분유가 일부 유통되던 시절로서 국내기업 중에 분유를 생산하는 기업은 없었다. 그래서 분유 시장의 선구자가 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1967년도의 일이다.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
분유를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 벌인 캠페인이 <전국 우량아 선발 대회>다. 생후 1년 정도의 아이들의 키와 몸무게 등을 측정해 우량 아로 선정한다. 그런데 이 캠페인이 유명해진 이유는 선발된 아이 에게 제공되는 특혜 때문이 아니다. MBC가 선발 과정을 풀버전으로 주말 황금시간대에 방송을 했기 때이다. 선발된 아이의 부모가 뉴스에도 나오면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진 것이다. 이런 대중 적인 인기는 N 유업의 인지도 향상에도 지대한 공헌을 미친다. 바로 이 캠페인을 만들고 필요한 모든 경비를 후원한 회사가 N 유업 이었다.
그리고 N 유업은 1991년 업계 최초로 떠먹는 요구르트를 생산한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요구르트는 음료를 마시는 것이었기에 떠먹는다는 개념이 없었다.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2015년 <백미당>이라는 고급아이스크림 가게를 런칭한다. <배스킨라빈스>가 고급아이스크림 시장의 거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있던 시절이다. ‘담백한 아이스크림’이라는 이미지로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참고로 <백미당>의 아래에 조그맣게 표시된 1964는 N 유업의 설립연도다. 하지만 <백미당>이 대놓고 N 유업의 브랜드라고 말하지 못한 이유는 2013년에 있었던 N 유업 불매운동 때문이었다.
<백미당>도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다.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이렇듯 N 유업은 마케팅의 힘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앞서가는 마케팅 능력만큼이나 수(守)가 구축이 되어 있지 않다 보니 대형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내부조직이 공고히 다져지지 못한 상태에서 리(離)만 일어나다 보니 그 간극의 차로 인해 균열이 발생하는 것이 다. 실제 2013년 ‘막말사건’에 이어 2019년 ‘비방댓글사건’이 터진 다. 내용은 이렇다.
N 유업이 홍보대행사를 동원해 회원 280만 명이 가입한 맘카페에 “B 유업의 우유 성분이 의심된다” “우유에서 쇠 맛이 난다” “우유가 생산된 목장 근처에 원전이 있다” 등 경쟁사의 제품을 비방하는 글과 댓글을 수십 차례 올렸다는 것이다. M 유업은 내용이 비슷한 글이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것을 수상히 여겨 2019년 4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의 조사과정에서 광고대행사와 N 유업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고 경찰은 홍보대행사를 압수수색해 해당 글을 게시한 아이디 50개를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N 유업이 홍보 대행사에 돈을 주고 이 작업을 지시한 것도 밝혀졌다.
이렇게 장황하게 N 유업의 히스토리를 소개한 이유가 있다. 보는 바와 같이 N 유업은 영업이나 마케팅적 관점에서 보면 천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해 보인다. 시장이 무얼 필요로 하는지도 알고 그걸 어떻게 홍보해야 하는지도 알고 또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도 너무나 잘 아는 회사다. 그런데 한 가지 결여된 것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흑묘백묘黑猫白猫>가 조직 전체를 너무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건 바로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이 조직의 영적인 관점 즉, 구성원들의 정신세계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정당한지를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놓쳤던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알고 있고 충분히 잘 전달했다는 착각 속에 있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져 지냈으니까.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모든 것들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어느 기업이고 공공의 이익을 배제하거나 선한 경제활동을 무시하는 기업은 없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왜 중요한지와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 어떤 재앙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받아들이는 무게감이 다르다는 것이다. 무능한 리더는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만 생각한 다. 개척이나 확장이란 단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여기서 이룬 성공체험으로 인해 자신이 능력자라고 생각한다. 반면, 유능한 리더는 확장을 의미하는 리(離)와 함께 조직의 기반을 다지는 수(守)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서가는 성장세에 부정이나 부패가 생겨나지 않도록 조직 다지기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의미다.
무능한 리더가 보이는 자기 착각을 가리켜 미국 미시건대학의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 교수는 ‘자가당착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논문(Unskilled and Unaware of It: How Difficulties in Recognizing One`s Incompetence lead to Inflated Selfassessments, 1999)에서 “실질적인 지식이나 능력이 낮을수록 자가 당착에 빠지는 현상이 강하다”고 말했다. 잠시 그의 연구논문을 살펴보도록 하자.
<연구방법>
더닝 교수의 연구진은 65명의 코넬대학(실험 당시 더닝교수는 코넬대에 있었다)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유머능력, 논리력, 추리력과 관련된 약 20가지 분야의 시험을 치르게 했다. 그리고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자신의 예상 성적 순위를 제출하도록 했다.
<연구결과>
그 결과, 실제 성적이 높은 학생 군은 자신의 성적을 낮게 적어냈고 성적이 낮은 학생 군은 스스로의 예상 순위를 높게 적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즉, 자신이 실제 가지고 있던 능력이나 지식이 적을 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현상이 있었던 것이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착각 때문에 개선을 위한 특별한 노력도 상대적으로 적게 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리고 뭔가를 시도하려는 의지나 생각도, 스스로를 낮춰서 생각하는 이보다 낮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시사점>
여기서 나온 용어가 ‘더닝-크루거 효과’다. 이 용어는 객관적으로 능력이 처지는 사람들이 능력이 뛰어난 이들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경향에 있음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N 유업의 리더들이 바로 여기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브랜드를 론칭시키고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면 뭐하겠는가? 영혼 없는 직원과 부정부패에 무감각한 직원들이 생기고 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직원의 비도덕적 행동은 성공 가도를 달려온 N 기업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여파가 있다. N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수 천명의 동료들이 ‘선하지 못한 기업’ 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으로 낙인이 찍혀버렸다는 사실이다. 한 명의 일탈행위가 수천 명의 명예를 더럽힌 꼴이 된 것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흑묘백묘>의 찬양론자
주변에 더닝크루거 현상에 사로잡힌 리더가 한 분 있다. 영업에서 20년을 넘게 지내온 베테랑 세일즈맨인데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 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일명 <흑묘백묘론>의 찬양론자다. 어느 중견 식품회사의 영업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분의 이런 사고와 철학은 그 회사의 영업부에 그대로 전이되었다. 영업에 관한 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흡사 전투에 임하는 최강의 전투 부대를 연상하게 한다. 덕분에 이 회사의 매출은 이분이 영입되어 온 후로 7년을 가파르게 성장했다. 매출이 거의 30배 가까이 올랐으니 회사에서도 영웅으로 추대를 받으며 승승장구 고위 임원까지 바로 직행을 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성장세에 맞추어 조직이 제대로 정비를 못 했다는 것에 있다. 한쪽에서 치고 나가면 한쪽에서는 다지는 역할을 해 주어야 하는데 다지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다 보니 균형의 추가 깨진 것이다. 이곳의 영업본부장처럼 <흑묘백묘>를 주장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수파리守破離>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수파리>란, 멀리 치고 나가는 리(離) 이전에 있는 곳을 다지는 수 (守)가 먼저 선행이 되어야 한다는 뜻의 경영용어다. 한번 생각을해 보라. 모두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파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조직이 어찌 돌아가겠는가? 도덕과 윤리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부정과 부패라고 했다. 일종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이 회사가 그랬다. 영업사원들이 거래처에 리베이트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에서 워낙 판매실적에만 집착하다 보니 어떤 방식으로 판매되었는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된 것이다. 무조건 많은 매상고를 기록한 사람만 승진을 하고 우대를 받으니 너도나도 판매실 적에만 목을 맨 것이다. 자기 돈으로 리베이트를 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임계점에 다다른 영업부의 모 대리가 늘어 나는 빛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발생한 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조용히 일단락이 되면서, 이 사건은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건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더닝크루거 현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정신 차리게 할 수 있을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피드백이다. 위에 있는 상사를 바라보는 부하직원들의 생각이 그대로 전해지면 개선의 가능성은 높다. 문제는 상사에 대한 피드백이 사적인 감정이나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방법에 있다. 더닝크루거 현상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아래로부터의 피드백을 못 견딜 것이기 때문이다. “감히 나한테 개선을 요구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생각을 갖는 이들에게 “너무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셔서 주변 불만이 많다”고 말을 하면, 오히려 화를 낼 것이다. 때문에 조금씩 피드백의 문화를 정착시켜 가는 것이 좋다.
* 출처 : 월간 인재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