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가 몰려온다
전 세계가 엄청난 인구구조 변화를 겪고 있다. 미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매일 1만 명씩 늘어나면서 2030년에는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일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의 상황은 이보다 심각하다. UN은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고령사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년보다 46만명 증가한 820만 6000명으로 조사됐다. 고령층 인구가 처음으로 8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에서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6.4%로 10년 전 11.3%에서 급격히 뛰었다.
문제는 한국의 고령인구 증가 속도가 매년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0.6%포인트 증가한 고령 인구 비중은 2019년 0.7%포인트, 2020년 .9%포인트 등으로 증가폭이 커졌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향후 3~4년 내 고령 인구 비중이 20%를 넘겨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 예상된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45년엔 일본을 넘어 세계 1위의 고령화 국가가 될 전망이다.
고령화의 원인은 다양하다. 의학 발전에 따른 기대수명 연장, 출생률 감소 등 이유는 많지만 결과는 같다. 앞으로 몇 십 년이 지나면 인구구조는 지금과 매우 달라지리라는 것이다. 고령화는 분명 일자리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은퇴를 미루고 싶은 또는 미뤄야 하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만 보더라도 평생직장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최근 10년 새 직장의 평균 근속기간은 19년 9개월에서 15년 2개월로 감소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5월 고령층 부가조사를 보면 55∼64세 취업 유경험자가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일한 기간은 평균 15년 2개월이다. 직장을 그만둘 당시 평균 나이는 49.3세로 쉰 살에 못 미친다.
고령화는 인재채용, 급여와 보상체계, 일하는 방식, 업무 구조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인지 이러한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 고령화가 전례 없는 방식으로 경영환경을 변화시킬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령인력에 대한 편견
전세계 인구구조가 변화하고 고령화된다는 사실에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고령화가 미치는 영향을 대개 부정적이라고 바라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고령화로 인한 경제성장 둔화, 생산성 저하, 사회 의존도 증대를 경고한다. 성장 잠재력이 쇠퇴할 것으로 보고 노동력 공급이 감소하고 생산성 증가가 둔화될 것을 걱정한다.
이러한 우울한 전망의 근거는 무엇일까? 경제학자들은 인구 부양비를 자주 언급한다. 부양비란 노동인구에 속하지 않는 15세 미만 인구와 65세 이상 인구의 합을 생산가능 인구로 나눈 비율이다. 이 척도는 고령자가 보통 생산활동을 하지 않으며 노년에 연금 소비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고 가정한다. 이 가정이 옳다면 ‘실버 쓰나미’를 심각하게 우려하는 게 합당하다. 고령인력 상당수가 병들고 할 일도 없고, 외롭고 궁핍하며, 인지 장애가 있다면 참으로 우울한 미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전망이다. 신체적, 인지적 장애로 고통받거나 다른 이유로 활동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고령인력도 있지만, 그보다 휠씬 많은 고령인력은 경제 활동을 할 능력과 의지가 있다. MERCER의 글로벌 인재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72%가 은퇴 후에도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조사결과는 고령인력의 일자리와 생산성을 예측하는 데 쓰인 가정이 틀렸음을 말해준다. 스탠포드 장수연구센터의 로라 카스텐슨(Laura Carstensen) 교수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전형적인 60대 근로자들은 건강하고, 경험이 많으며, 젊은 직원들보다 직업 만족도가 높을 가
능성이 높다. 직업의식과 애사심도 높다. 업무지식이 많으며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데 능숙하다. 출세보다 의미있는 기여에 관심이 많다. 또 사회적 결속력을 키우고 정보와 조직 가치를 공유할 가능성 역시 젊은 직원들보다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연령차별주의에서 비롯된 선입견은 사회 곳곳에 굳게 자리 잡고 있다. 고령직원의 장점은 고정관점에 가로막혀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직원 중심의 조직문화는 고령직원의 가치를 폄훼한다. 기업 대부분은 젊은 직원에게 보다 많은 투자를 한다. 50세 이상 직원에게 교육하는 건 소홀히 한다. 고령직원의 존재 자체를 생각하지 않으려는 기업들도 있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성별, 인종, 성적 지향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고정관념을 가져서는 안 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나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래도 되는 분위기다. 다양성과 포용성 관점에서 대변되지 않는 유일한 집단은 고령직원인 듯하다. 어떻게 하면 기업이 고정관념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재능과 능력 있는 고령직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
정년에 대한 고정관념 버리기
우선 모든 직원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시부터 6시까지 한 사무실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사고를 버릴 필요가 있다. 60세에 정년 퇴직한다는 개념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대신 고령직원의 능력과 성향에 적합한 창의적 멘토링, 시간제 일자리, 유연근무제, 안식년 같은 기회에 투자해야 한다. 많은 고령인력들은 유연한 근무시간과 단계적 은퇴 기회가 주어진다면 높은 연봉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부 기업은 이미 전통적인 근무 형태를 벗어난 프로그램을 도입해 성공적인 업무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의 편의점 CVS는 ‘스노우버드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직원들이 계절에 따라 다른 지역을 여행하며 근무할 수 있도록 타 지역 CVS 파견근무 기회를 준다. 홈디포(Home Depot)는 퇴직한 노동자 수천 명을 고용하여 그들의 전문지식을 매장에서 활용한다. 미쉐린(Michelin) 역시 은퇴한 직원을 재고용해 프로젝트 감독, 지역사회 관계 증진, 직원 멘토링을 담당케 한다.
세대간 조합을 고려한 조직구성
조직을 구성할 때 연령대 조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머지않아 베이부머, X세대, 밀레니얼, Z세대 등 네 세대에 이르는 인력이 함께 일하는 기업이 많아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대간의 고정관념은 효과적인 조직운영을 방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세대가 의미 있는 일을 원하지만 자기 세대를 제외한 나머지는 단순히 돈을 위해 일한다고 믿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기업은 직원들이 공유하는 공동의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MZ세대만을 공략하는 전략은 편협한 시각이다. 모든 직원들이 조직에서 근무하며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돕는 요소에 집중할 때 휠씬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다양한 세대 직원들이 서로 상호보완하고 배울 방법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젊은 직원의 에너지와 속도에 연륜 있는 직원의 지혜와 경험을 결합하는 세대 간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PNC 파이낸셜그룹은 다양한 세대로 팀을 구성해 타깃 고객에 대한 이해도를 높임으로써 금융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는 세대 간 협력이 주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시니어 인턴 제도’를 실험적으로 도입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인턴'에서 모티브를 얻어 2016년부터 시작했다. 70세의 시니어 인턴은 기업 홍보, 커뮤니케이션 담당 경력을 바탕으로 동일 분야에서 20세 초반의 젊은 인턴들과 함께 일했다. 비록 시간당 18.25달러의 급여였으나 돈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회사에는 전문 분야에 대한 자문을, 같이 일한 젊은 인턴들에게는 업무에 대한 조언뿐 아니라 삶에 대한 자세 등을 멘토링 함으로써 성공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제품과 서비스 혁신의 모든 단계에서 젊은 직원과 고령직원이 협업하게 하면 직원들에게 성장할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세대 간 관계, 멘토링, 교육, 팀워크를 촉진하며 소외 문제가 완화되고 편견의 벽을 허무는데 돕는다. 이런 프로세스를 시작하려면 우선 모든 세대의 직원들과 대화가 필요하다. 직원들이 서로 자신의 목표, 관심사, 요구, 우려사항을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나이가 적든 많든 직원들이 업무에 대해 품고 있는 걱정이나 희망사항은 비슷하다. 하지만 조직 전체에서 이해해야 할 차이점도 있다. 다양한 세대가 참여하는 기회를 찾고 젊은 직원과 고령직원이 기술 개발과 멘토링을 통해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고령 가족 케어
BMW는 생산직 근로자의 고령화로 예상되는 생산성 저하에 대응하기 위해 조립 라인과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에르고노믹스(Ergonomics)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을 막고 전기 충격을 줄이는 나무 바닥, 신체의 무리를 줄여주는 이발소식 의자, 시력에 도움을 주고 품질 에러를 줄이는 확대경 등 고령인력의 근무 효율을 높이는 여러 장치를 고안하는 등 총 70여 가지를 개선했다. 총 5만 달러가 소요되었으나 연간 생산성이 7% 상승했고 결근율도 동종업계 수준이던 7%에서 2%대로 하락했다.
지멘스는 고령인력의 역량 개발을 위해 콤파스 프로세스라는 역량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자신의 강약점에 대해 상사, 동료, 고객으로부터 360도 피드백을 받고 워크숍을 통해 이를 분석, 구체적 경력개발 계획을 수립한다. 계획의 현실성 등을 경영진, 인사부서와 검토하고 그 계획에 따라 경력개발을 수개월 진행한 후 2차 워크숍을 통해 진척 상황과 문제점을 점검하고 추가적인 방안을 수립한다.
노령 노동자뿐 아니라 고령자를 돌보는 직원까지 관리하는 사례도 있다. 가족 돌봄의 범위가 아이에서 노령화된 부모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기업이 여기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최근 풀타임 직원과 파트타임 직원을 막론하고 연간 10일 동안 '백업 케어'를 저렴한 비용에 이용할 수 있도록 상당한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직원들이 하루 5달러만 내면 집에 보모나 간병인을 부를 수 있다. 나머지 비용은 스타벅스에서 보조해 준다. 이 혜택은 기존의 사내 의료보험과 별도로 제공된다.
유연근무제부터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진 팀 구성, 고령가족 돌봄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조직과 인력관리의 프로세스 재조정이 필요하다. 인구구조 변화라는 현실을 이제는 모른 척할 수 없다. 고령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것은 기업문화를 바꾸고 기회를 창출하며 성장을 촉진하는 광범위한 변화를 이끄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 출처 : 월간 인재경영